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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의 아내도, 엄마도 되지 않겠다"... 웨딩드레스 입고 '비혼' 선언하는 이유

 웨딩드레스와 축하 분위기는 그대로지만 신랑도, 결혼서약도 없는 새로운 의식이 한국 사회에 등장했다. '비혼식'이라 불리는 이 행사는 결혼이라는 제도에 반기를 들고 자신만을 위한 삶을 선택하는 여성들 사이에서 점차 인기를 얻고 있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최근 한국에서 비혼 여성들이 '비혼식'을 통해 전통적 결혼관에 도전하는 현상을 보도했다. SCMP는 "경제적 부담과 가부장제의 억압을 벗어나려는 여성들의 욕망이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30세 강씨는 서울의 한 스튜디오에서 웨딩드레스를 입고 기념 촬영을 했지만, 그 옆에는 신랑이 아닌 반려견이 함께했다. 강씨는 "어릴 적 꿈이 웨딩드레스를 입고 사진을 찍는 것이었다"며 "하지만 나는 누구의 아내도, 누구의 엄마도 되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녀에게 비혼식은 자신을 위한 행복을 선택한 상징적 순간이었다.

 

32세 정씨도 지난해 하객 40명을 초대해 자신만을 위한 '비혼식'을 열었다. 단발머리에 회색 정장을 입은 정씨는 하객들 앞에서 "평생 나 자신을 사랑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녀는 "결혼은 원치 않는 옵션이 너무 많은 패키지여행 같다"며 결혼과 함께 여성에게 강요되는 커리어 단절과 육아·가사 책임을 거부하는 선택이었다고 설명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3년 11월 기준 한국의 30대 미혼 비율은 51%에 달한다. 이는 2000년과 비교해 4배 이상 증가한 수치로, 특히 서울에서는 30대 10명 중 6명이 미혼인 것으로 나타났다. 비혼을 선택하는 가장 큰 이유로는 경제적 부담이 꼽힌다. 결혼과 함께 요구되는 신혼집 마련이 서울·수도권의 높은 부동산 가격으로 인해 많은 신혼부부가 '빚더미 신혼'을 시작하는 현실이다.

 

SCMP는 "한국의 평균 결혼식 비용은 약 3억 원에 달한다"고 보도하며, 결혼을 둘러싼 과도한 경제적 부담이 비혼 선택의 중요한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비혼을 선언하는 젊은 층이 증가하면서 일부 기업들은 결혼한 직원에게만 지급하던 축의금 대신 '비혼 수당'을 도입하는 변화도 나타나고 있다. 이는 다양한 가족 형태를 인정하고 개인의 삶의 선택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기업 문화가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비혼 수당이 등장했음에도 비혼 여성들이 감당해야 하는 사회적 압박과 부정적 시선은 여전히 존재한다. SCMP는 "한국이 현재의 구조를 바꾸지 않는다면 사회가 무너질 수 있다"고 경고하며, 출산율 하락의 책임을 여성 개인에게 전가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지적했다.

 

비혼식은 단순한 트렌드를 넘어 결혼이라는 제도와 여성에게 강요되는 전통적 역할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자신만을 위한 삶을 당당히 선언하는 이 의식은 한국 사회의 변화하는 가치관과 새로운 삶의 방식을 보여주는 상징적 현상으로 자리 잡고 있다.